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반도의 지도자 목록 (문단 편집) == [[일제강점기]] [[조선총독부|조선총독]] == || '''순서''' ||<-2> '''이름''' || '''재임 기간''' || '''설명''' || ||임시 /[br]1대 총독||[[파일:Masatake_Terauchi.jpg|width=100]] ||[[데라우치 마사타케]]||1910년 8월 29일 ~ 1916년 10월 14일||[[야마구치]]현 출신. [[한국통감부]]와 총독부가 공존한 시기에 통감으로서 직무 대리함. 이후 기존의 지위에 이어 총독으로 승격, 초대 조선 [[총독]]으로서 무단 통치를 실시한다.|| ||2대 총독||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Hasegawa_Yoshimichi.jpg|width=100]]||[[하세가와 요시미치]]||1916년 10월 14일 ~ 1919년 8월 12일||[[야마구치]]현 출신. [[3.1 운동]]을 무력 탄압하는 등 무단 통치로 비판을 받아, 토지 사업을 완료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3년만에 교체되었다. 여담으로 [[한국통감부]] 당시 통감부의 임시 통감[* 정확하게는 [[이토 히로부미]]의 선대]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.|| ||3대 총독||[[파일:attachment/사이토 마코토/sa431.jpg|width=100]]||[[사이토 마코토]]||1919년 8월 12일 ~ 1927년 4월 4일||[[이와테]]현 출신. 형식상의 [[문화 통치]] 정책을 추진하여 기존의 강압적 통치에서 회유적 통치로 방향을 돌렸다.|| ||권한 대행||[[파일:우가키 가즈시게.jpg|width=100]]||[[우가키 가즈시게]]||1927년 5월 10일 ~ 1927년 9월||[[오카야마]]현 출신. 경제 개발 정책을 표방하면서 [[한국어]] 시간을 대폭 축소시키는 등 문화 말살정책의 초석을 펼쳤다.|| ||4대 총독||[[파일:야마나시 한조.jpg|width=100]]||[[야마나시 한조]]||1927년 12월 ~ 1929년 8월 16일||[[가나가와현]] 출신. 부패한 '금권 장군'. 조선총독부의옥(朝鮮総督府疑獄) 사건에 관련되어 사임하였다. 일설에는 [[타이완]]에서 [[조명하]]가 일본 황족(국구) 구니노미야 구니요시[* [[쇼와 덴노]]의 장인]를 칼로 찌른 사건의 책임까지 겹쳤다는 말이 있다.|| ||5대 총독||[[파일:attachment/사이토 마코토/sa431.jpg|width=100]]||[[사이토 마코토]]||1929년 8월 17일 ~ 1931년 6월 16일||[[이와테]]현 출신. 형식상의 문화 통치 정책을 추진하여 기존의 강압적 통치에서 회유적 통치로 방향을 돌렸다.|| ||6대 총독||[[파일:우가키 가즈시게.jpg|width=100]]||[[우가키 가즈시게]]||1931년 6월 17일 ~ 1936년 8월 4일||[[오카야마]]현 출신. 경제 개발 정책을 표방하면서 [[한국어]] 시간을 축소시키는 등 문화 말살정책의 초석을 다졌다.|| ||7대 총독||[[파일:미나미지로.jpg|width=100]]||[[미나미 지로]]||1936년 8월 5일 ~ 1942년 5월 28일||[[오이타]]현 출신. [[내선일체]] 등을 주장하고, 지원병 제도를 실시해 [[강제징용]]으로 조선 청년들을 [[중일전쟁]]에 참전시켰으며, [[일본어]] 사용 [[창씨개명]], [[신사참배]], [[황국신민서사]] 암송 등 민족말살정책을 강행하였다.|| ||8대 총독||[[파일:고이소 구니아키.jpg|width=100]]||[[고이소 구니아키]]||1942년 5월 29일 ~ 1944년 7월 21일||[[도치기]]현 출신. [[학도 특별지원병 제도]]를 실시하였며, 조선 소년소녀들을 [[하시마]]와 [[위안부]]로 끌려가게 했다. 1944년 [[도조 히데키]]가 [[총리]]직에서 물러나고 총리가 되었다.|| ||9대 총독||[[파일:아베노부유키.jpg|width=100]]||[[아베 노부유키]]||1944년 7월 22일 ~ 1945년 9월 28일||[[이시카와현]] 출신. 총리 출신이 [[총독]]이 된 경우. 마지막 해의 전쟁 수행을 위한 물자와 인력의 수탈에 총력을 다하였다. 국민 의용대를 편성하여 비협조적인 조선인을 대규모로 탄압, 검거했다. 패전 후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.|| [include(틀:문서 가져옴,this=문단,title=조선총독부,version=632,paragraph=3)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